가시침 1 - 탱자가시

2016. 6. 14. 15:24외가의글

가시침

 

 

탱자가시

깡 깡 까아앙

깡 깡 까아앙

깡 깡 깡깡 까아앙 …」

 

누부야 시끄러버 죽겠다.

두손으로 귀를 막으며 해봉이 고함을 쳤다.

시끄러버도 우야겐노 ! 참아야지.”

그래도 시끄러버 죽겠다. 마 미치겠다.”

해봉은 펄쩍 펄쩍 뛰며 정말로 못 견디겠다는 듯 계속 고함을 질렀다.

장독대 옆 남향받이 턱에 대가리를 박고 졸고 있던 워리도 해봉이 고함을 치자 일어나 박자를 맞추듯 컹컹거리며 짖어댔다.

니는 와 자꾸 짖노 ? 용이 깰라 고만 짖어라.”

 

깡 깡 까아앙

깡 깡 까아앙

깡 깡 깡깡 까아앙 …」

 

조선공사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힘찬 또 하루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음이었다. 조선공사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백 미터 남짓한 봉래동566번지 달동네는 이 엄청난 소음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소음 취약지였다. 하루하루가 포화가 터지는 전쟁의 악몽 같은 삶의 연속이었지만 동네주민의 상당수가 조선공사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소음 정도는 인고의 대한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내해야 할 고행이기도 했다.

깡 깡 까아앙

깡 깡 까아앙

깡 깡 깡깡 까아앙 …」

 

짜랑 짜랑

짜랑 짜랑 짜라랑 ……」

 

깡깡이 소리에 더해 이젠 철판 연마(練磨)하는 차랑소리까지 더해 들려오자 해봉이 악을 쓰는 소리도 높아갔다.

. 누부야 시끄러버 증말 미치겠다.”다시 해봉이 고함을 쳐도 해근은 간밤에 다듬이질 한 이불효청의 귀를 맞추는 일에 열줄할 뿐 못들은 체 하며 빙긋이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해근은 해봉이 짜증내며 고함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니 어제 묵었던 군밤 생각이 나서 그라제 ?”

아이다. 누부야.”

해봉은 비밀을 들킨 듯 깜짝 놀라며 짐짓 아닌 척 시치미를 뗐다. 깊어가는 가을에 며칠 전 아버지가 벌초차 고향에 다녀오시며 올밤 한 포대를 가져온 것을 엊저녁에만 벌써 군밤으로 여남은 개를 먹어치운 해봉이 다시 군밤이 먹고 싶어 짜증부리는 것을 해근이 모를 리 없었다.

장독대 바위에 빨랫줄을 팽팽히 잡아당겨 맨 해근은 이내 부엌으로 들어가 군밤 한줌을 쥐고 나왔다.

니 이거 묵고싶어 그카제 ?”

아이다. 누부야. 씨 누부야는 내가 머 돼진줄 아나 ?”

정말이제 ? 니 이거 안묵고싶제 ?”해근이 군밤을 도로 부엌으로 가져갈 요량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해봉이 재빨리 해근의 앞을 가로막으며 해근의 손에 든 군밤을 홱 낚아챘다.

누부야는 ! 내가 안묵는다 캤나 머 !”군밤을 낚아채는 순간 한 개가 땅에 떨어져 때구르르 구르더니 워리의 밥그릇 안으로 톡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본 워리가 주워먹으려고 달려왔다. 그러자 해봉이 달려오는 워리의 앞을 가로막아 섰고 워리가 멈칫거리자 오른발로 워리의 턱주가리를 걷어차 올렸다. 워리가 거리며 물러서자 해봉은 워리의 밥그릇에 떨어진 군밤을 주워올렸다. 군밤에 물기가 조금 묻어있었지만 해봉은 소매에 쓱쓱 닦아내고 껍질을 벗기더니 입에 쏙 넣어 오물거리며 씹기 시작했다.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행동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잽싼 몸놀림에 해근이 혀를 홰홰 내두르며 놀라워했다. 해봉이 무서워진 워리는 해봉이 까먹고 버린 군밤의 껍질만 핥고 씹었다. 가을 햇살에 익은 조개구름 몇 조각이 고갈산에서 넘어와 영도앞바다를 건너 용두산 공원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용두산 공원에서 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늦었다. 야 봉아. 내 엄마한테 가서 용이 젖먹이고 올게 니 혼자서 밤 묵고 놀고 있어라. 알겠제 ? ”

. 누부야. 내 잘 놀고 있을게 갔다 온나. 그런데 작은 누부야는 어데 간노 ? ”

말집 우에 우물에 빨래 하러 안갔나. 곧 올끼다.” 말을 마치고 해근은 워리의 목줄을 말뚝에 묶고는 방안에서 해룡을 업고 나와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해근이 나가고 난 뒤 해봉은 호주머니에서 꺼낸 밤을 하나씩 까서 맛나게 씹어 먹었다. 밤을 까먹을 때마다 껍데기가 떨어졌으므로 워리도 해봉 주변을 돌며 껍데기를 씹었다. 밤을 서너개 남겨 호주머니에 넣은 해봉은 뒷간 옆에 무성히 익어가고 있는 탱자를 쳐다보았다. 약으로 쓰기엔 너무 익어 노랗게 굵어진 탱자가 가시 속에 숨어 있는 광경이 봉래동566번지를 배경으로 한폭의 수채화처럼 가을 햇살아래 익은 국화향의 농담(濃淡)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슬슬 장난기가 발동한 해봉이 워리 가까이 다가가 졸고 있는 워리의 배때기를 힘껏 걷어찼다. 깜짝 놀란 워리가 뛰어오르며 해봉에게 덤벼들었으나 목줄 때문에 물지 못하고 컹컹 짖기만 했다. 워리를 피하려던 해봉은 그만 장독대 옆 고랑에 발을 헛디디며 마당에 자빠지고 말았다. 자빠지며 돌부리에 옆이마를 찧고는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점점이 떨어지는 피로 인해 흙이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워리는 고것 쌤통이다며 컹컹 짖어댔으나 해봉이 꼼짝도 하지 않자 심상찮음을 느낀 듯 으르릉 컹컹 으르릉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가축이지만 해봉이 크게 다쳤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 분명하였다.

 

깡 깡 까아앙

깡 깡 까아앙

깡 깡 깡깡 까아앙 …」

 

짜랑 짜랑

짜랑 짜랑 짜라랑 ……」

 

다시 오후작업을 알리는 사이렌소리가 들린뒤 점심시간동안 멈췄던 깡깡이차랑 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워리의 짖는 소리와 묘한 박자를 이루며 몹시 어수선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대문밖이 어수선하더니 빨래바구니를 머리에 인 금주와 빨래방망이를 든 수학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 워리야. 니 와이래 씨끄럽게 짖고 있노 ? ”수학이 워리를 노려보며 마당으로 들어서다 비명을 질렀다.

언니야 봉이가 쓰러져 있다 !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머라꼬 봉이가 ? 야 봉아 봉아 아이고 야가 와 이래 있노 ? 피를 많이 흘맀네 ? ”

금주는 빨래바구니를 장독대 옆에 던지듯 올려놓고는 해봉을 안아 일으켰다. 그래도 해봉이 말이 없자 금주는 해봉을 방안으로 옮기고 바가지에 물을 떠 들어가 얼굴에 물을 뿌렸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침착한 금주도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언니야 봉이 보게또에 이기 머꼬 ? 아 군밤이네 그라먼 ? ”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수학이 몸을 홱 돌려 워리를 째려봤다.

. 워리야. 니 봉이 군밤 뺏어 묵을라꼬 덤빘제 ? 이놈이 니 오늘 함 죽어바라.”수학이 빨래방망이를 들고 워리에게 다가서자 해근이 고함을 질렀다.

봉이가 또 워리 괴롭힌 모양이다. 빨리 된장독에서 장 한 숟가락 떠오너라.”

알았다 언니야.”수학이 장독에서 된장 한 숟가락을 떠내 장독대 옆 아주까리에서 따낸 잎사귀에 담아 쥐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걸 받아 금주가 피가 흘러나오는 해봉의 옆이마에 척 갖다붙였다. 그리곤 자신의 저고리 고름을 툭 떼내 해봉의 머리를 둘러 싸매었다.

금주는 마당에 나가있는 수학을 불렀다.

수학아수학아 ! ”

와 언니야 ?” 빨래바구니에서 꺼낸 빨래를 빨래줄에 널고 있던 수학이 황급히 자신을 찾는 언니의 부름에 응답했다.

. 저 통시깐 옆 탱자나무에서 탱자까시 하나 빨리 뽑아 온나.”

음 알았다. 언니야.”

수학은 통시깐 옆 울타리 탱자나무로 뛰어가 가시 하나를 굵직한 놈으로 꺾어 냈다. 통시 뒤는 이북동네였다. 몇 년 전 휴전으로 포성이 멎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이 몰려온 북녘 사람들이 판자집 짓고 밭 일구어 만든 동네가 이북동네였는데 욕쟁이 할마시 밭에는 옥수수가 참하게 익은 둔덕 위로 코스모스가 애절하게 피어서 한들거리고 있었다.

울엄마 가슴의 상처가 다시 도지는 가을이 깊어지는구나수학이 탱자가시를 꺾어내면서 갑자기 든 생각 때문에 수학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깜빡 잊고 있었다.

수학아.지금 머하노 ?”금주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수학은 방으로 달려갔다.

자 언니야 탱자까시. 그런데 언니야 코스모스가 많이 핐더라.”

그렇제 ? 아까 빨래 하고 오민서도 같이 안봤나 ?” 건성으로 말을 하며 금주는 받아든 탱자가시에 콧김을 몇 번 쏘인뒤 해봉의 인중으로 가져가 요리조리 위치를 재보더니 해봉의 인중 한복판에다 탱자가시를 콕 찔러 넣었다.

순간. “아이고 아파라.”얼굴을 잔뜩 찡그린 해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우리 봉이 깨났네. 어떤노 ? 마이 아푸나 ?”

그래 누나야. 그런데 이기 무씬 냄새고 ? ” 해봉은 머리에 둘러매져 있는 옷고름을 풀어낼려고 했다.

임마. 가만히 있어라. 된장 발라 놨다.”수학이 해봉의 어깨를 탁 치며 제지했다.

니 말해 바라. 워리한테 무슨짓 핸노 ? 또 워리 괴롭힜제 ? ”

아이다. 내가 발을 헛디디가꼬 꼬랑에 빠지가 자빠짓따 마.”

그라마 됐다. 씰데 없이 워리 괴롭히지는 마레이. 니 가시침 맞은데 피가 흐르네.보자 거기도 된장 쫌 바르자.”

에이 안한다 누부야.”그리고 해봉은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사립문을 열고 해룡을 업은 해근이 들어오면서 해봉의 몰골을 봤다.

야 봉아 니 머리에 뭐를 싸매고 있노 ?”

아 언니야 오나 ? 해봉이 박을 깨가지고 자빠져 있길래 인중에 가시침 놓고 된장 붙여놓았다.”

와그랬노 ? 봉아. 용이도 엄마 젖 먹이고 오다가 자꾸 올리길래 혹시 얹힜는가 싶어 째보아지매한테 손좀 따고 온다. 그런데 핵이는 와 안보이노 ?”

언니야. 핵이는 학교에서 아직 안왔다.” 금주가 서녘으로 흘러가는 조각구름을 보며 말하였다.

가시나 이거 또 이찌지꾸 따묵고 있는거 아이가 ? 야 봉아 니 한번 가보고 온나. 저 가이당(階段)까지만 가봐라. 워리 니도 봉이 따라 가거라.”

해근이 장독대 말뚝에 묶여 있던 목줄을 풀어주자 워리는 신이 나서 해봉을 따라 달려 나갔다. 가이당은 해근네가 살고 있는 봉래동566번지에서 언덕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차도에 이르는 접속계단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계단이라 말해라 해도 해근네 아이들 입에는 일본말인 가이당이 입에 익어버려 있었다. 그것은 마을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표준어가 된 셈이었다. 가이당은 차도에 이르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곳을 통해 아이들은 봉학국민학교를, 어른들은 조선공사를 다녔다.

자 언자 저녁밥 준비하자. 주야 니는 밭에 가서 호박하고 호박닢 좀 따온나. 그라고 땡초도 듬뿍 따 오너라. 오늘은 호박쌈으로 저녁해 묵자. 수학이 니도 언니 따라가라. 그런데 수학이 야는 어데 간노 ?”

큰 언니야. 내 방안에서 공부하고 있다. 숙제한다.”

. 오늘 아파가 학교도 안갔는데 무씬 숙제고 ?”

음 언니야 그래서 어제 숙제 한번 더하고 안있나.”

숙제는 나중에 하고 작은 언니 따라가 찬거리 좀 따온나.”

. 알았다. 언니야수학이 부엌에서 대소쿠리를 하나 들고 나와 금주의 뒤를 따랐다. 소쿠리 챙기는 것은 수학의 일이었다.

수학이 금주를 따라가자 해근은 해룡을 방안에 눕혀놓고 나와 작두샘에서 물을 퍼올렸다. 시원하게 쏟아진 우물물을 바가지에 가득 뜬 해근은 시원하게 마셨다. 장독간에 핀 몇 줄기 안되는 코스모스를 보며 해근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시집가고 나면 저 어린 동생들은 누가 돌보나 ?] 문득 해근은 마음이 울적해졌다. 째보아지매가 중매 서서 선본 그 청년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시집가더라도 여덟살이나 적지만 금주가 워낙 새처워서 음식장만이며 빨래며 잘 해내겠지만 한 집안의 맏이로써 다섯 명의 동생들을 두고 한촌(寒村)에서 빠져 나가는데 대해 마냥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걱정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동란의 혹독한 세월을 넘기며 기아에 가까운 병마로 산하에 묻어야 했던 두 남동생에 대한 애절함에 자신도 못견딜 노릇인데 그들을 낳은 엄마의 고통은 감히 재기도 어려웠다. 아버지는 또 어떤가 ? 워낙 성격이 강직해 자질구레한 일은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성격이어서 한 번도 당신이 겪은 일이며 가슴에 새겨진 상흔을 듣지 못했지만 젊은 날에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런 처지에서 해근은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는 것이 마냥 편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새 해근의 눈가에 맑은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순간 깜짝 놀라 해근은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쌀 한됫박을 반달바가지에 담아 나왔다. 그리고 물을 붓고는 보리쌀 껍질이 벗겨져라 빡빡 문질러 댔다. 보리쌀을 다 씻어 솥에 재워넣은 뒤 땔감을 한가득 빼내 왔다. 해근이 막 잔가지에 불을 붙여 지피자 대문밖이 소란스럽더니 도혁과 해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워리가 꼬리를 흔들며 들어섰다. 그러자 마당은 또다시 활기가 넘치며 시끄러웠다.

큰 언니야. 오민서 땔감으로 쓸 나무가 있어 주워왔다.”

도혁이 자기힘에 부칠 정도로 부피가 큰 땔감을 새끼줄에 묶어 들고 있었다. ”

그래 용케 주웠네. 수고했다. 그런데 니 그 꼬라지가 머꼬 ? 옷은 와 다 젖었고 또 신발 한쪽은 어데갔노 ?”

큰 누부야. 핵이 누부 신발을 막 떠내려 가는 것을 내가 주워왔다.”해봉이 고무신 한짝을 내밀었다. 해근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막 끓고 있는 밥솥의 불을 줄이려고 장작을 빼고 있는 순간 또 사립문을 열고 금주와 수학이 대소쿠리에 한가득 담은 호박이며 호박잎이며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언니야 호박 따왔다. 어제보다 훨씬 더 커졌더라. 어제 안따길 참잘했다.”그리고 도혁의 꼴을 유심히 살피던 금주가 고함을 지르더니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가시나. 니 옷은 어데서 또 베리가 완노 ? 또 이찌지꾸 따묵는다꼬 도랑 건너갔제 ? ”

아이다 언니야.” 도혁이 기가 죽어 우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가시나. 옷 다 베맀네. 빨리 벗어라. ”방안에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금주가 도혁의 저고리와 치마를 벗겨냈다. 그리고 장독간 작두샘가로 데려가더니 바가지로 물을 가득 퍼 도혁의 머리에서부터 확 부었다.

아이구 가시나. 안그래도 봉이가 장난치다 쏟아서 반도 안남은 잿물이 니 때문에 다 없어진다. 그래 이찌지꾸가 아직도 남아 있더나 ?”

이찌지꾸 따묵으로 간기 아이다.”

거짓말 하지 마라. 안그라먼 니 옷은 어데서 베맀노 ? 또랑 건너다 베린거 아이가. 봉이한테 물어보까 ? 가시나 속일꺼를 속이라. 내 눈에 훤히 다 보인다.”

아이구 가시나. 나는 이찌지꾸나무에 미끄러질까봐 무서버서 접근도 못하는데 니는 우예가 가노 ? 재주도 좋데이 ! 그라나 마나 어제 겨우 내려놓은 잿물을 니 옷 빤다꼬 다 쓴다.” 혼자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겨주는 금주에게 미안했던지 도혁은 애써 시선을 돌린 채 해봉에게 알밤 먹이는 주먹을 내보이며 입단속 신호를 보냈다.

금주가 퍼붓는 바가지 물에 도혁은 연신 하푸 하푸를 하면서 저물어 가는 서녘하늘의 노을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젯밤 숙제하면서 국어공책 맨 뒷장에 써놓은 노을이란 제목의 동시가 생각났다. 잠이 쏟아져 완성하지 못한 동시를 오늘밤엔 꼭 완성해야지 생각하는 도혁이었다.

 

맛있는 고래고기 볶아묵꼬 굽어묵꼬

도혁이 거의 몸을 다 씻을 즈음 골목길을 돌아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고모아재다.”도혁이 소리를 질렀다.

큰 누부야. 우리 오늘 고래고기 꿉어묵자.” 해봉이 도혁의 말에 이어 해근에게 채근하였다.

너거는 우예가 항상 묵는거 갖고 그래 말이 많노 ? ”도혁과 해봉은 찔끔하면서 혀를 빼물었다.

맛있는 고래고기 볶아묵꼬 굽어묵꼬낭랑하게 들려오던 소리가 해근네 사립문 앞에서 딱 멈춰지더니 빼꼼히 사립문이 열렸다.

. 근아. 작은 소쿠리 하나 갖고 나오너라.”

. . 고모아재예. 소쿠리는 와예 ?”

빨리 갖고 나오너라.”

.”

지게짐 행상으로 해물장사를 하는 고모아재는 해근이 가져온 소쿠리에 고래고기를 큼직하니 한점 끊어 담아주었다.

너거 아부지가 고기 좀 끊어놓고 가라 카더라. 요놈 볶아 먹어도, 고추장 발라 구워먹어도 맛있다.”

아재예. 돈은예 ?”

돈은 너거 아부지한테 받았다.”

 

고래고기 볶아묵꼬 굽어묵꼬

고기판을 다시 지게에 동여매고 고모아재가 골목길로 사라지고 난 뒤 다시 사립문이 열리며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내 새끼들. 아무일 업제 ?”

! 엄마다.”피로에 찌들었음에도 엄마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마당으로 들어섰고 해근은 물론 해근의 동생들은 우루루 엄마 곁으로 몰려갔다. 엄마를 본 도혁이 괜스레 설움이 북받친 듯 울먹거렸다.

? 핵이가 와 우노 ? 무슨 일이 있었나 ? ”

아이다. 엄마. 가시나 니가 머 잘했다꼬 울긴 와 우노 ? ” 금주의 야단에 도혁이 깜짝 놀라며 혀를 빼물었다.

엄마는 안봐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해근아 이 고기는 무슨 고기고 ?”

해근의 손에 들린 대소쿠리를 보고 엄마가 물었다.

아까 고모아재가 주고 갔는데 돈은 아부지한테 받았다 캅디더.”

너거 아부지가 오늘 손님을 모시고 올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데리고 온다카던데 그라먼 빨리 음식 장만하자.”

엄마. 고기 꿉어묵자.” 엄마와 큰누나의 말을 듣고 있던 해봉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래 우리 봉이가 배가 고푼 모양이구나 ? ”

음 엄마. 내 배 고푸다.”

그런데 니 머리에 둘러싼 옷고름이 뭐꼬 ? 코밑에는 와 피가 흘렀노 ? ”

해근이 엄마에게 해봉이 마당에 자빠져 피 흘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금주가 해봉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해봉의 이마에 손가락 꿀밤을 한 대 놓으며 꾸지람을 했다.

배고푸기는 뭐가 배고푸노 ? 군밤 묵꼬 이찌지꾸 묵고도 배가 고푸나 ?”

아이다 누부야. 내 이찌지꾸 안묵었다.땡꼬는 와 때리노 ? ”

이찌지꾸 말에 해봉은 머쓱해져 도혁을 바라봤다. 그러자 도혁은 모른체 하며 장독 너머 영도 앞바다에서 한창 옥수수 곡물 하역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서양배 기선을 쳐다보는 양 깨금발을 하고 있었다.

봉아 니도 빨리 옷 벗고 씻어라. 핵이 옷 빨민서 니것도 빨자. 야튼 너거 둘 빨래뿐이다.”

해봉이 옷을 벗어놓고 간 빨래감을 주워들면서 금주는 빙긋이 웃었다. 해봉의 반바지 호주머니에 군밤 몇 개와 이찌지꾸 하나가 들어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금주는 그것을 빼내 부엌 찬장 안에 갖다 두었다. 부엌은 순전히 엄마와 해근언니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해봉이 들어와 보진 않을 것이었다. 이미 혼담이 오고간 해근이 시집가고 나면 금주가 이어받을 부엌이란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금주는 자주 들락거리며 이미 자신만의 비밀공간을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금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찌지꾸를 찾아 후다닥거릴 해봉의 행동을 궁금해 하며 싱긋이 웃었다.

해근은 고모아재가 끊어두고 간 고래고기를 구워먹을 요량으로 얇게 썰어야겠다 생각하며 수학을 불렀다.

수학아 ! 빨리 나와서 고기 쫌 빚어라.”

언니야. 내가 해볼게.”도혁이 해보겠다며 나서자 해근이 손사레를 쳤다.

가시나. 니는 안된다. 니는 뚜껍게밖에 몬썬다 아이가.”

헤헤이 언니도. 뚜껍게 썰이야 맛있지

빨리 비키라. 니는 해봉하고 가서 땔깜이나 쫌 주워온나. 너거가 잿물 다 썼으니 또 만들어야지. 콩대가 없으면 참나무가지라도 꺾어오너라

언니는 내가 머 장작때긴줄 아나 ? ”불평하면서도 도혁은 해봉 손을 잡고 사립문을 나섰다. 동생들이 나뭇가지 주우러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해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어쩐지 어설퍼 보였고 쓸쓸했다.

근아. 니 전에 선본 젊은이가 어떤노 ? 썩 마음에 들지 않던 ? 요 며칠 새 니 표정이 영 쓸쓸하구나 ! ”엄마가 해근의 미소를 보며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역시 쓸쓸한 어감으로 물었다.

아니. 엄마. 고생하는 엄마와 동생들을 두고 시집간다 생각하니 그저 마음이 찡하네요.”그리고 해근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신랑이 조선공사에서도 탄탄한 자리에 있으면서 훌륭하다 하니 잘 살거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공부도 변변히 시키지 못하고 이 에미가 미안하구나. 친정 걱정은 하지 말고 잘 살거라. 참 너거 아부지가 오늘 너 신랑감 데리고 올 모양이니까. 저녁은 꽁보리밥 대신 쌀을 좀 많이 넣어 짓거라.”

. 엄마.”

해근이 부엌으로 들어가고 난 뒤 곧이어 사립문이 열렸다. 해근이 아버지가 퇴근한 모양으로 도시락 통을 들고 들어오고 뒤를 이어 도혁과 해봉이 콩대며 불쏘시개 땔감나무를 한 아름 새끼줄에 묶어 안고 따라 들어왔다.

아부지예. 다녀오셨슴니꺼예 ? ” 도혁과 해봉이 입을 모아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뒤에서 인사하는 아이들에겐 짐짓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골목길에 뻘쭘하니 서있는 청년에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들어오지 않고 뭐 하는가 ?“

아 예. 들어갑니다. 어르신

임자. 나 왔소. 오늘 사위와 함께 왔소.”

. 잘했습니더. 빨리 들어가소.”

오늘은 저녁밥을 넉넉하게 짓도록 하소. 오면서 술도 좀 사왔으니 안줏거리도 좀 마련하고 참 아까 너거 고모아재한테 고래고기 좀 갖다 놔라 했는데 갖고왔더나 ? ”

. 갖고 왔습디더. 지금 수학이가 빚고 있어예.”

안녕하십니까 ?”해근이 아버지 뒤를 따라 청년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남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청년의 인사에 응답한 것은 워리가 먼저였다.

그렇게 워리의 손님맞이 인사로 봉래동566번지 박씨집의 하루도 저물어 갔다.

 

가시

고래고기를 빚어 고추장을 발라 구워낸 저녁상은 푸짐하였다.

오늘 고기를 맛있게 구웠구나.”

보통 때와는 달리 따로 겸상을 받아 청년과 마주한 해근 아버지가 소주 한모금을 마시고 고기 한 점을 씹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자네도 빨리 들게나. 우리 큰애가 음식솜씨가 좋아 뒷바라지를 잘 할거야. 자넨 큰 복을 만났네.”

.어르신

어르신이라니 ? 이제부터 장인이라고 부르게나. 잔칫날이 한 달도 안남았으니 그렇게 부르게.”

. 빙장어른.”청년은 조금 쑥스런 듯 말하고는 해근엄마를 쳐다보았다.

빙모님도 술 한잔 하시죠.”

아 됐네. 이서방이나 많이 자시게. 음식이 입에 맞는다니 다행일세.”

해근엄마의 말을 이어 해근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자네도 보다시피 우리집엔 모두 여덟 식구라네. 결혼하면 맏사위로 어깨가 무거울테니 각오 단단히 하게.”

. .빙장 어른. 제가 잘 하겠습니다. 그런데 빙모님은 택호가 무엇입니꺼 ?”

. 택호는 삿갈댁일세. 청도 매전면에 삿갈이란 마을이 있다네. 처남들이 어려서 좀 서먹하겠지만 처제가 많으니 심심치는 않을게야. 이 어린 처제들이 공부를 잘해 내가 기대가 크다네.그래 핵이는 오늘도 공부를 잘하고 왔제 ?”

가시나. 또 이찌지꾸 따묵는다꼬 옷도 다베리고 안왔습니꺼.”

금주가 낮에 있었던 일들을 다 까발리자 도혁은 시무룩하니 입을 씰룩거렸다.

너무 머라 카지마라 주야. 핵이가 뻘땅이 짓을 해도 갸만큼 심성이 착한 아이도 없다 마그리고 아부지가 일본말 쓰지 말라꼬 내내 안카더나. 이찌지꾸는 무화과, 가이당은 계단 알겠제 ?”

.”모두 입을 모아 대답하자 해근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다.

이서방도 참새새끼처럼 모여 큰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 처남이며 처제를 둘러보았다.

봉아.”

해근아버지가 해봉을 불렀다.

.”

. 아부지 무릎에 와서 한번 앉아봐라.”

해봉이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아버지 무릎에 앉자 아버지는 조그만 소주잔에 남은 소주를 해봉에게 마시라며 입술에 대주었다. 해봉의 누나들이며 엄마가 깜짝 놀라며 제지할려 했으나 해봉은 싫단 말 한마디 없이 찡그리며 마셔댔다. 해봉의 아버지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이가 우리집안의 장손일세. 원래 두 명의 형이 있었지만 지난 고난의 시기에 모두 박명하여 일찍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네. 그래서 이 아이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할 장손이 돼 버린 것이지. 이 아이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또한 이 아이의 운명일세. 그리고 그 운명이 가시가 되어 이 아이의 장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지. 내가 비록 지금은 경비원 노릇이나 하고 있지만 청도에선 누대로 이어온 행세하던 집안의 후예일세. 그러니 자네가 앞으로 처남을 잘 좀 끌어 주게.”

독한 술을 한모금 마신 해봉은 입안이 타는 듯 했지만 조금도 표정의 변화없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봉아. 오늘 아부지가 기분좋은데 노래 하나 불러봐라.”

아버지의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해봉은 뻘쭘하니 일어서서 목청을 빼기 시작했다.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봉이 효자 !”

노래를 끝낸 해봉은 마치 후렴구 부르듯이 봉이 효자를 외쳤다. “봉이 효자란 말은 해봉이 스스로 지어낸 말이었다. 노래도 노래려니와 봉이 효자란 말에 삿갈댁 내외는 항상 즐거워했고 행복해 했다.

해봉의 재롱을 본 아버지는 해봉의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앉은 자리에서 춤을 덩실덩실 춰댔다.

부자가 함께 이뤄내는 광경앞에 이서방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꺼워했다.

참 보기 좋습니다.”

그렇지 ? 자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 . 우리 해봉이 앞으로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재목이지 암 ! ”그러며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 또다시 홀짝거렸다.

근이 아버지. 사위 앞에서 술 취하겠소. 적당히 하소삿갈댁이 걱정스레 말을 하자 이서방이 말을 받으며 삿갈댁을 안심시켰다.

빙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기분이 좋아 그러시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럼 저는 시간도 늦었고 하니 이만 일어설까 합니다. 아직 식사중이신데 송구합니다.”

그러시게. 해근아 니가 골목길에까지 내다 보거라.”

삿갈댁은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얘기가 길어지는 남편의 술버릇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위를 빨리 내보낼 생각을 했던 것인데 이서방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해근아버지는 술병이 비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여태 가슴에 담아두기만 했지 한 번도 끄집어 내지 않던 집안의 일들이며 고향을 떠나온 사연이며를 찬찬히 식구들에게 토로하듯 얘기했다. 해근엄마도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어 솔깃하게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얘기에 지겨워진 도혁, 수학이며 해봉의 누나들이 모두 작은 방으로 건너간 뒤에도 해봉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아버지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토록 구워 먹자고 큰 누나를 조르던 고래고깃점이 접시에 뒹굴고 있어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차분한 해봉의 모습에 해근은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해봉의 누나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차츰 잊고 있었지만 해봉은 하나하나 그것을 기억하며 후일 성인이 됐을 때 집안의 옛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과연 장손의 자질이 어릴 때부터 나타났던 것이다.

해근아버지의 이야기는 해근아버지가 소변이 마려워 일어설 때까지 계속됐는데 막 밤12시를 알리는 사이렌소리가 들려올 즈음이었다.

아이구. 우리 장손. 해봉이 아직 자지도 않고 아버지 말을 다듣고 있었네 ?”

음 엄마. 그런데 내 코밑이 자꾸 따갑다.”

어데가 ? 한번 보자. 아까 낮에 작은 누나가 탱자나무 까시로 찔렀다 카던데 아이가 ?”

맞다. 엄마.”

한번 보자. 근아 저 호롱불 이리 가까이 가져오너라.”

돌지름(石油)를 담은 주먹만한 호롱에 심지를 붙여 불을 밝힌 호롱불이라 해도 해봉의 인중(人中)을 훤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잘 안보인다. 탱자가시가 부러진 모양인데 ? 함보자 봉이 니 얼굴을 엄마 얼굴에다 가까이 붙여 바라

해봉이 얼굴을 내밀자 해봉 엄마 삿갈댁은 혀를 내밀어 해봉의 인중을 핥아댔다.

아야. 엄마. 아푸다.”

아 요게 뭐가 걸린다. 가시끝이 부러진기 맞는 모양이다. 좀 아파도 참아라.”

삿갈댁은 다시 해봉을 바짝 끌어당겨 세운 왼쪽 다리에 해봉의 몸을 기대게 한 뒤 해봉의 인중을 샅샅이 핥아 내었다.

아프다고 엄살을 떨던 해봉이 잠시 후 조용해지며 삿갈댁은 해봉의 인중에 박혀있던 탱자가시 끝을 핥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시끝은 삿갈댁의 혀 끝에 박혀버렸다. 삿갈댁은 따끔하는 아픔을 느꼈음에도 내색하지 않고 칭얼대는 막내 해룡의 입에다 다시 젖을 물렸다. 그사이 해근과 금주에 의해 저녁상이 다 치워지고 봉래동566번지 초가지붕 박씨 집엔 평화로운 밤이 잦아들었다.

 

이튿날 해근이 끓인 북어국을 아침상서 받아든 박씨는 엊저녁의 주사(酒肆)가 민망했던 까닭에 말없이 밥만 먹고 출근을 준비했다. 서로가 몸둘 바를 모를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해근의 엄마 삿갈댁이었다.

당신은 와 술만 마시면 그토록 주사가 늘어진답니까 ? 이제 과거의 일일랑 깨끗이 잊어버리고 저 아이들 훌륭하게 키울 생각이나 해야 안되겠슴니꺼 ? 청도서 있은 일을 생각하면 내가 더 치가 떨립니다. 이제 그만 잊으소. 자꾸 생각하면 그기 가슴에 까시로 남아 자꾸 맴을 찌른다 아인교? 가시는 밖에서 찔리기도 하지만 내가 스스로 가슴속에서 키우는 기 더 무섭다 안카능교 ? 그러니 제발 마음의 가시를 좀 빼던지소. 그라고 그동안 내 도기공장 다니면서 번 돈으로 마 쪼그만 점빵이라도 하나 낼 생각인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 ”

점빵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가? 물건 나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일낀데 !”

그거는 마 걱정 마소. 다음달 월급 한 번 더 받으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점빵 열테니 그리 아소.”

도혁야 엄마가 계산해바라 캤던거 계산 해봤나 ?”삿갈댁의 강인한 모습이 이어지는 말에서 강력하게 나타났다.

음 엄마. 오백육십삼원 칠십전만 더 있으면 딱 오천원이라예

어제도 엄마가 월급을 이백오원을 받아왔는데 그라먼 얼매가 부족하노 ?”

삼백오십팔원칠십전이라예.”

그라먼 되겠다. 아부지 월급이 이번달부터 조금더 오른다 카잉 다음달 보름에는 문을 열겠네. 올 추석전에 점방을 열 수 있을란가 ? 우리 핵이가 계산 하나는 똑 소리 난다. 이번 시험은 잘봤나 ? ”

. 엄마. 이번에도 우리반에서 1등 했씸더.”공부 말만 나오면 도혁은 공손해졌고 그것이 삿갈댁 내외를 무척 기쁘게 했다.

그래? 우리딸 장하데이 수학이도 공부를 잘 하제엄마는 참 기뿌다.”

삿갈댁의 그 말에 해근과 금주가 부러워 하며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점방 여는 것에 마음이 설레었던 삿갈댁은 얼굴이 발갛게 홍조를 띄었다. 물건 나르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몰라도 도기공장서 하루종일 물레질 하는 일은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고된 일이었다. 가마 안에서 구워진 그릇을 들어낼 때는 가마안의 열기에 온몸이 익는 것 같았고 며칠씩 계속되는 피로감에 골수가 바짝바짝 마르는 공포를 느끼기기까지 했다. 남편이 조금만 더 벌이가 좋은 직장에 다녔더라면 당장 때려치웠겠지만 미곡창고(米倉)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만 믿고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못내 한심스럽기조차 하였다.

오늘 남편이 꺼낸 이야기만 해도 그랬다. 고향에서 조그만 밭뙈기를 물려받아 농사에만 충실하자고 그렇게 말했건만 농사가 싫다며 읍내 상점에 점원으로 취직한 것부터가 사단이었다. 일인이 경영하는 주류도매점서 일한지 두 달도 채 못돼 대금절취범으로 몰려 주재소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받았던 것이었다. 남편이 겪은 고초는 오히려 단순한 것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자신도 끌려가 발가벗김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은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삿갈댁은 치가 떨려 죽을 노릇이었다. 남편이 억울한 누명으로 그 고초를 겪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부선철로 남성현터널 보강공사 노동자로 대구부에 와있던 일인 부랑배가 진범으로 잡힘으로써 풀렸지만 주재소장이 미안하다며 쌀 두 가마 값을 집에 와 툭 던져주고 간 행위가 더 괘씸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누명을 벗음에 따라 남편은 이동이 자유스러워져 청도를 떠나 부산으로 떠나와 조선공사에 취직하기 위해 영도다리를 건넜다. 영도다리를 지키고 있는 일인 순사가 무서워 영도남항동과 자갈치를 잇는 전마선으로 건넌 것은 해방을 5년 앞둔 경자(庚辰1940)년이었다. 남편이 부산으로 떠난 2년 뒤 삿갈댁도 농사를 정리하고 금주를 업고 해근,해진,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영도다리를 건너 남편을 찾아와 조선공사가 손에 잡힐듯한 566번지에서 가족을 이루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해진과 그 아래 해구, 두 아들을 잃고 딸아이 둘을 더 낳았으니 바로 도혁과 수학이었다. 한국전쟁이 겹치는 고난 속에 해근과 금주는 국민학교 공부조차 변변히 시키지 못했으나 도혁과 수학이 공부를 참하게 했던 까닭에 삿갈댁은 가슴 속에 박힌 가시를 달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남편에겐 항상 마음의 가시를 버려라고 했으나 정작 자신의 것은 내버리지 못했고 때로는 남편의 마음속에 박혀있는 가시조차 자신의 것으로 삭여낼 욕심까지 부려보았던 것이다.

남편의 가시는 자신의 것과는 성격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누대로 글 잘하는 선비 집안의 후손으로 일제 말기, 고향에서 당한 고초야 그렇다지만 한국전쟁이 일기 전 보도연맹원으로 오해받아 영도다리 옆에 있던 수상경찰서에 수감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광경을 보면서 공포가 일상화 되다보니 무시로 마음속의 공포를 터뜨리는 가시를 내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치란 것이 무엇인가. 사상이란 것은 또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고 그런 고심은 자꾸 이기적으로 변모해 가는 국민의 심성에 연결돼 있어 보였고 그결과 남편은 항상 부패한 정치권이 국민을 천박하게 만든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권의 업보는 언젠가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칼날로 번득일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해근아버지의 생각은 단호했다. 치밀함에선 일본을, 끈질김에선 북한을 앞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러지 못하면 온몸을 찌르는 가시에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찔리기 시작하면 계속 당하기만 해야 하므로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은 고루하달 정도로 야물었다.

한국전쟁이 막 휴전으로 마무리되고 모두가 경제부흥에 매진하던 그 무렵 피폐한 정치와 경제사정과는 아랑곳 없이 해근네 집 옆 개천의 무화과나무는 해마다 탐스런 열매를 맺었고 유달리 먹성이 좋은 해봉은 온갖 것을 먹이로 삼아 뛰어다녔고 심지어는 영도앞바다의 물빛까지도 삶의 양식으로 삼았다. 그런 해봉의 앞날은 너무도 험하고 고통스러웠다. 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정체성을 마련키 위해 일찍 철이 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해봉의 성()은 가을 햇살이 풍만한 돌담위의 탱자가시나무처럼 울창한 가시로 무장돼 있었고 시도때도 없이 그의 본성을 찔러댄 가시로 인해 상처받고 또 자연치유된 상처의 덧자리에 고독을 발동에너지로 삼아 불을 밝히는 성채(城砦)의 망루(望樓)를 세워나갔다.

해근이 이서방과 결혼해 정든 봉래동566번지를 떠난 뒤에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금주가 부엌을 드나들며 안방살림을 전담하며 삿갈댁을 도운 까닭에 삿갈댁은 그해 추석을 앞두고 자그만 점방을 차릴 수 있었다. 점방은 없는 것이 없는 잡화점이자 곡식,부식가게는 물론 목마른 동네노인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잔소주 목로주점이기도 했다. 삿갈댁의 점방은 곧 연초(煙草)판매점의 허가까지 내면서 담배집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금주를 포함해 그녀의 네 동생들은 담배집 아아들로 지칭되었다.

담배집아아들은 그들의 어머니 삿갈댁의 곱고 강인한 심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하나같이 온순하고 젊잖았으며 또 끈질겼다. 해봉이 조선공사 앞에 있는 봉학(鳳鶴)국민학교에 일곱 살의 나이로 입학한 그해 도혁이 부산의 명문여중인 부산여중학교에 합격해 입학했고 그 3년 뒤 수학도 부산여중학교의 신입생이 된데다 해봉도 몇 년 뒤 경남중학교에 합격해 삿갈댁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로 말미암아 해근의 아버지가 잘 다니던 직장서 퇴직하며 퇴직금을 노름으로 날리고 축첩까지 하는 등, 끝내 자신의 가슴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지 못하고 망가져 간 아픔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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