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2016. 2. 28. 15:18외가의글

나잇값


박도영

 

 

  오랜 세월 전 30대로 들어서며 29세로써 싱그러운 내 청춘의 시절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40세를 맞을 때는 인생의 꿈이 

사라져 버렸노라 상심했다. 그때까지도 어느 방면의 자격증이든 한 가지는 따놓겠다는 일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기에. 하지만 아

이 셋 치다꺼리에 10년 세월은 번개처럼 지나갔다. 50대로 들어설 때는 좀 더 절망적이었다. 49세로써 나를 지탱해 줄 버팀목이 아무 것

도 없음에. 얼굴, 몸 스타일, 패기 등 거울에 비친 49세 아줌마의 이지러진 모습에서 삶에 대한 열기와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느덧 용모‧ 학벌‧ 건강 등 생활패턴 전반에 걸쳐 평준화를 이뤄가는 분기점, 60대를 맞는가 싶더니 마치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어영

부영하는 사이에 세월은 음속(音速)처럼 치달아 70을 넘겼다. 아니 이럴 수가! 따지고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어느 것 하나도 이

룬 게 없었다. 마음이 쓸쓸하고 착잡했다. 그리고 슬펐다.


  필부(匹婦)의 삶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지만 유독 나만 손해 본 것 같은 생각에 며칠 간 방안에 틀어박혀 별 의미도 없는 책들만 뒤

적거렸다. 어느 어머니인들 그러지 않으랴만 자녀들의 뒷바라지에도 혼신으로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나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당혹감을 느끼며 은근히 오기가 발동했다.


  장남 부부의 맞벌이로 아이들을 맡은 지도 어언 8년째다. 손주들을 키우는 나의 노고는 잊어버리고, 가끔 우리 부부를 해외여행으로 보

답하는 그 사실만 고맙게 받아들였으니 한참이나 잘못된 계산법 같다.

의학 잡지에서 본 글이지만 사람이 진심으로 ‘노(no)' 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입으로 내는 소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체의 모든 면이 그

말을 뒷받침하게 된단다. 즉 각종 분비선, 신경, 근육 등의 조직이 한꺼번에 거부태세로 굳어지는 반면 ’예스(yes)'라고 말할 경우에는 신

체의 조직 스스로 감정을 받아들이려는 태세가 된다고 한다. 부정적 사고의 소유자가 단명한 것은 임상실험으로도 판명된 사실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할 말을 대체로 못하고 지내왔다. 어릴 때는 엄한 도덕 관념의 부친 훈계가 무서웠고, 결혼 후 시어머니의 

말씀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율법처럼 나의 행동을 조종하는 잣대로 군림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안방 문 위쪽에 ‘참을 인(忍)’ 자를 표구하여 걸어놓은 집들이 많았다. 시집을 가도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 3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던 시절이었다.


친정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순종과 희생을 보고 자란 터라, 나의 인성 또한 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든 싫은 소리 못하고, 주면 되

돌려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나는 천생 바보였다. 남편의 생활 방식이나 성격도 나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불평했다. 성경에 ‘내 눈

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본다’ 라고 기록된 성구는 어쩌면 나를 두고 지적한 말씀 같았다. 어찌됐건 간에 나 자신이 항상 

손해만 보는 인생이라 낙담했다.


윤리도덕 잘 지키며 범법 행위와는 거리가 멀기에 ‘나는 착한 사람’이란 인식으로 자신만만했는데, 죄는 육체적인 행동만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점이 자주 느껴진다.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사는 친구들과 비교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질투하던 마음의 죄는 더욱 큰 번민의 요

소가 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나이에 터득하게 되었으니 나 자신이 얼마나 둔감한

지 알만하다.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는 진리처럼 인생의 막바지로 치달은 요즘 감정에 변화가 오며 새삼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막혔

던 시야가 트이듯 모든 사물이며 인간관계가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모습의 손주들은 나의 노고를 대변하는 

듯하며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한다. 아이들의 양육 부담을 덜은 아들 내외가 사회 일에 마음 놓고 전념하게 되어 나름대로 성과를 

얻으니 그 역시 보람된 일이다.


  인간이 세상에 나올 때, 신으로부터 한 가지의 달란트는 부여 받는다고 한다. 그간 집안 일로 불평했던 내게도 문학에 입문하여 글을 

쓰는 보람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바라는 희망사항은 없어지게 되었다. 사람은 각자 맡은 바 직분대로 일을 해내면 될 일이다. 크

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만이 훌륭한 게 아니다. 바늘로 할 수 있는 일을 큰 칼이 대신할 수 없듯, 큰일을 하는 사람과 비교하여 작은 본

분에 충실한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옛 어른들이 늘 하시던 말씀 “나잇값을 하라” 는 말의 뜻이 이제야 터득된다. 남은 생애 

동안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존재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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